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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산마을>6.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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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강 댓글 0건 조회 136,767회 작성일 18-12-2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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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1천4)은 우리나라에서 해발 1천를 넘는 몇 안되는 고개 가운데 하나다.한계령은 백두대간에 있는 설악산과 점봉산의 산마루에 걸터 앉아 인제와 양양을 가른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1,2,3리)는 한계령 정상에서 인제쪽으로 내려가는 완만한 고개를 따라 드문드문 터를 잡고 있다.가장 낮은 지역도 해발 4백를 웃도는 고지대마을이다.
지금은 한계령에 44번 국도가 번듯하게 놓여있어 산마을의 정취를 만끽하기 힘들지만 20년전만 해도 첩첩산골이었다.심마니 마을이 있을 정도였다.한계리는 인제군에서 독특한 지역이다.험한 산에 둘러싸여 있는 인제군은 「은둔의 땅」이라 불렸고 간혹 「배타적」이란 소리까지 들었다.그러나 한계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말은 오해다.
한계리 사람들은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麻衣)태자」를 흔쾌히 받아들였고,그를 역사속에서 다시 살렸기 때문이다.
이희태(65.한계3리)씨는 『마의태자는 935년 10월 하순경주를 떠나 추위와 눈보라가 심한 겨울에 지금의 한계리에 도착했다』며『이들 일행이 몹시 추웠던 것을 되새겨 한계(寒溪)란 이름을 붙였을 것』이라고 말했다.마의태자는 신라 마지막 왕 56대 경순왕의 9남3녀 가운데 첫째 왕자로 성이 김(金),이름이 일(鎰),자가 겸용(謙用)이었다.경주를 떠난 뒤 나라가 망한 것을 자책하고 조국광복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삼베옷을 많이 입어 「마의」라는 이름이 붙었다.전 설에 따르면 마의태자는 21세에 경주를 떠나 신라가 망한지 1백년이 되던 1036년,1백21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한계령 정상에 있는 한계산성은 전설을 현실로 끌어내린다. 산성은 한계령 중턱에 있는 옥녀탕계곡을 따라 약 3㎞를 올라가면 있다.동국여지승람에는 성벽의 길이가 6천2백57척(1척=30.3㎝),높이가 4척으로 규모가 대단했다고 적혀있다.그러나 현재는 1천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청태가 낀 길이 73.6,높이 5.2의 성터만 남아있다.한계산성 위로 올라가면 마의태자가 머물렀다는 대궐터가 나온다.
산성을 짓는데 쓰인 기와는 한계2리에서 만들었다.한계2리는 와천리(瓦川里)라고도 부르는데 이곳에서 기와를 구웠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한계리 사람들은 평소엔 조용히 삼을 캐고 꿀을 따지만 마의태자 이야기가 나오면 누구나 한마디씩은 하고 싶어한다.1천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더러는 처음과 바뀌고 새로 만든 이야기도 있지만 망국의 왕자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춘원 이광수는 『소설 마의태자』에서 마의태자로 하여금 『열 두번 죽으려도 죽지 못하고 살아있는 내 몸이 부끄러워라….』고 되뇌게 하고 있다.
반은 죽고 반은 산듯이 망국의 한을 되씹었던 마의태자는 한계리에서 얼마나 위안을 받았을까.

  볼거리 먹거리
 한계리에는 볼거리가 많다.
한계령 정상까지 가는 길은 외설악의 빼어난 경치를 볼 수 있다.옥녀탕계곡을 비롯,대승폭포.소승폭포.가마탕 등이 있다.
한계3리에 있는 한계사지는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647) 지장율사가 세웠다.용대리 백담사가 원래 이곳에 있었다.
한계3리에 있는 장수대는 6.25때 전몰장병들의 명복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제3군단장인 오덕준장군이 지은 산장이다.1백명을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아름다운 설악산을 끼고 있다.
마을 어귀에는 한계리 관광민예단지가 있다.공예품을 직접 손으로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고 전시된 물건을 살 수도 있다.여유있는 사람들은 옥녀탕계곡으로 올라가는 한계산성과 대궐터를 가볼만하다.
한계리에서는 외설악관광농원((0365)461-4204)과 외설악송어양식장((0365)461-3169)을 권하고 싶다.관광농원에선 토종닭.감자부침개.도토리묵 등 토속음식을 파는데 특히 강원도 감자로 만든 감자부침개가 고소한 맛이 나 는 것이 막걸리와 같이 먹을 만하다.간단히 식사할 사람은 한계리 관광민예단지 휴게소 안에 있는 식당((0365)461-3169)에서 장터국밥이나 산채비빔밥을 먹는 것도 괜찮다.

  <산사람>인제군 한계리 포수 손봉수씨
『유능한 포수는 산짐승의 발자국을 잘 살펴야 해.언제 지나간건지,주위에 아직 있는지 발자국을 보고 알아차려야 한다구.』 포수 손봉수(65.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2리.사진)씨는 한창때 별명이「사냥개」였다.그만큼 산짐승 쫓는 능력이 뛰어났다.그는 아직도 인제군에서 알아주는 현역 명포수다.
그가 사격에 능한지 여부는 그의 총을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그가 애지중지하는 엽총은 미국 히킨스제 외대꺾기다.보통 엽총은 탄알이 두발 들어가는 쌍대꺾기다.쌍대꺾기는 표적을 맞힐 때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그러나 외대꺾기는 단 한 번 뿐이다.
따라서 사격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외대꺾기 엽총을 꺼릴 수밖에 없다.그는 이 외대꺾기 엽총을 35년전 구입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여태 곰은 10여마리 잡은 것 같애.멧돼지는 셀 수없지,몇 백마리 정도는 되지 않을까 .지난해에는 멧돼지 6마리를잡았어.』 그가 30년전 점봉산에서 발견했다는 호랑이 이야기는흥미진진하다.
『눈덮인 점봉산에 5명이 사냥을 갔을 때야.3백 쯤 앞쪽에 큰송아지만한 동물이 눈에 띄더라고.뚜렷하게 보진 못했지만 표범은 아니야.표범이 그렇게 덩치가 클리 없거든.사냥개들이 겁을 먹고 엉거주춤하며 나서려고 하지 않은걸 보면 호랑이가 틀림없을거야.』그는 아직도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손씨는 열아홉 살 때부터 사냥을 했다.
『물론 좋아서 했지.산짐승이 총에 맞아 쓰러질 때 통쾌한 기분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거야.그러니까 눈덮인 산을 설피를 신고도 하루에 80~90리씩 다니는 것 아니겠어.』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진짜 산꾼은「포수」와「심마니」라는 말이 실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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