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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사람들 5 왕곡마을- 과거로의 회귀를 강요당하는 전통마을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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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강 댓글 0건 조회 192,157회 작성일 18-08-2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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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가 있었다. 믿었던 장군은 적을 치라고 내준 군사를 되돌려 도성을 점령했다. 새 권력 앞에서 사람들은 제 앞길을 가리느라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구토 회복을 꿈꾸던 왕은 변방으로 내몰리는 수모 끝에 죽임을 당했다. 충신이 역적이 되고 역적이 개국공신이 되던 이씨 조선 개국기, 강릉 함씨의 두 형제 부림과 부열의 우애도 금이 가고야 만다. 형 부림은 이성계 편에 서서 광영을 누리지만 동생 부열은 공양왕에 대한 충절을 선택했다. 이 때문에 함부열은 고려조의 마지막 충신인 두문동 칠십이현의 반열에 올라 후세의 존경을 받지만 그 후손들은 조선건국 뒤에도 한동안 몸을 사려야만 했다. 이 후손들이 조선의 눈길을 피해 든 곳이 지금의 고성군 오봉리 왕곡(旺谷)마을이다.

“부자 열자 쓰시는 할아버지에게 두 명의 손자가 있었는데 그중 동생인 치자 근자 쓰시는 할아버지가 왕곡에다 터전을 닦았지. 아주 명당이야.” 마을 노인의 자랑처럼 왕곡마을은 임진왜란 때에도 한국전쟁 때에도 화를 입지 않았다 한다. “6·25 때 폭탄이 하나 떨어지긴 떨어졌는데 그게 불발탄이더래요. 참 신기한 일이죠.” 이야기를 거들던 17대 종손 함병식(61) 이장의 땅 자랑은 96년 4월 고성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었던 고성산불에까지 이어진다. “불? 무서웠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불이 마을을 건너뛰더라고.” 마을을 빙 두른 5개 봉우리 가운데 4개가 불탔지만 마을은 터럭 하나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마을의 지세가 물 위에 떠 있는 배의 형국이라서 그 무서웠던 고성산불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 마을 사람들의 믿음이다. 이런 땅 생김새 때문에 옛날에는 마을 가운데에는 우물도 파지 않았다고 한다. 배의 가운데에 구멍을 내면 배가 침몰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옛날 왕곡마을은 짐승소리나 들리는 오지 중 오지였다. 산꼭대기에 서면 인근의 짐승소리가 피리의 궁·상·각·치·우 다섯음처럼 들린다고 해서 마을 뒷산을 오음산(五音山)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한다. 동학의 2대 교주였던 해월 최시형이 관의 눈을 피해 수개월간 도피처로 삼았을 만큼 외지와 교류도 적었다.

백두대간의 지맥이 동해로 떨어지기 직전 만들어낸 5개 봉우리가 마을의 양 옆과 뒤를 호위하고, 송지호가 마을의 앞을 가로막은 탓에 바닷가에서 언뜻 보기에는 도저히 마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곳에 왕곡마을은 자리잡고 있다. 바닷가에서 10여리도 채 안 떨어진 거리지만 외지에서 왕곡마을을 들어오기 위해서는 송지호를 에둘러오는 토끼길 하나와 바닷가 공현진마을에서 한고개를 넘는 길뿐이다. 이런 지형 탓에 왕곡마을은 오랫동안 옛 전통을 고수하고 살 수 있었다.

“전통마을로 지정된 뒤 고개를 깎고 포장을 해서 그렇지 6·25가 끝나고도 한참동안 우마차도 오르지 못하는 험한 고개였다우.” 함 이장의 회상이다. 마을 사람들은 “고개가 하나뿐이라서 한고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마을의 어른 가운데 한사람인 함정균(70) 할아버지는 한고개(汗古介)라고 바로잡는다. 말 그대로라면 군주가 넘나들던 고개라는 뜻이 된다. “공양왕이 죽은 곳이 삼척이 아니라 간성이라는 일설이 있습니다. 당시 함부림이 공양왕 살해의 명을 받았으나 동생 부열의 간곡한 청으로 그 명을 집행하지 못했다는 거죠. 부열은 부랴부랴 공양왕을 간성으로 모시는데 뒷날 이성계의 후환이 두려웠던 형 부열이 간성에서 공양왕을 살해한 뒤 삼척으로 옮겼다는 거죠. 함부열이 공양왕을 살해하지 않고 숨어 살도록 도왔는데. 뒤에 공양왕이 죽은 뒤 몰래 묻은 곳이 지금의 왕곡이라는 이야기도 있죠.” 고성군 관광지도계장 이선국씨의 말은 왕곡의 ‘왕’자가 지금의 성할왕(旺)이 아니라 임금왕(王)자였다는 마을 노인의 이야기와, 고개이름을 낳게 된 내력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행상이나 시체가 한고개를 넘는 것은 금했다고 한다.

전통가옥 보존마을 1호인 왕곡마을에는 과거로 돌아가기 위한 공사가 11년째 계속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98년까지 마무리됐어야 했지만 예산이 부족해 공사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2003년까지는 마치겠다고 했으니 또 기다려야지요.”

함 이장의 한탄에는 고성산불로 마을 성황당이 타버려 매년 정월초삼일 명맥이나마 유지하던 마을제까지 지내지 못하게 된 아쉬움이 뒤섞인다. 나이 사십이 다 되도록 혼례를 치르지 못한 마을 청년에 대한 걱정은 “옛날에는 왕곡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신부감이 줄 섰는데…”하는 회상에 이르러서는 아예 체념에 가깝다.

아직 버스도 들어오지 않는, 그래서 마을 사람들 스스로 서슴없이 산골이라고 말하는 왕곡마을. 전통가옥보전마을 뒤에는 불안한 개발의 삽날이 삐죽 튀어나와 있다. “송지호에 골프장을 짓는다나, 콘도를 짓는다나. 우리가 송지호를 가꾸느라고 얼마나 애썼는데. 송지호 재첩 덕에 마을이 돈도 벌구….” 함 이장은 송지호 개발은 안 된다고 하지만 도로공사가 끝난 뒤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하다만 경지정리의 의미가 송지호와 왕곡마을의 내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마을 아낙들간에 한동안 땅에 얽힌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서울에서 온 땅 잘 보는 한 사람이 “새로 내는 길이 용의 머리를 자르는 꼴이라 마을의 기운이 쇠할 것”이라고 했다는 거였다. 유난히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 왕곡마을 앞 너른 송지호. 철새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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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바람은 막고 온기는 나누는 북방식 겹집

왕곡마을은 금강산문화권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남아 있는 전통가옥들은 전형적인 ‘ㄱ’자형 북방식을 따르고 있다. 하나의 대들보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방을 내고 부엌과 식량창고인 도장 등이 모두 한지붕 아래 모여 있는 겹집(양통집)구조가 특징이다. 외양간도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본채의 처마 밑에 지붕을 연결해 부엌과 연결해 놓았다. 부엌과 안채, 외양간까지 모두 하나의 공간으로 묶은 것은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나오는 온기가 가옥 전체로 퍼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관북지방이나 강원북부, 아래로는 안동지역까지 겨울이 비교적 길고 추운 지방에서 흔히 보이는 가옥양식이다.

왕곡마을의 가옥 대부분은 팔작지붕 구조에 대문이 없다. 비교적 넓은 뒤채에는 돌담을 두르고 그 밖으로 대나무 등 방풍림을 심어 혹독한 겨울 바람을 막고 앞으로는 돌담이나 대문 등을 따로 두지 않아 햇볕과 따뜻한 동남풍이 집 안으로 잘 들도록 했다.

지은 지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여년 이상된 가옥들은 지난 89년부터 보수공사를 시작해 차츰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지만 옛날 집만 못하다는 것이 마을 어른들의 중평이다. 벽이 얇아 찬 기운을 제대로 막지 못하는 데다, 기와도 옛날 것보다 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왕곡마을 인근의 구성리에서 구웠다는 옛 기와는 지금도 멀쩡하지만 현대식 기와는 잘 쪼개진다. 기와가 너무 강해 수축과 팽창이 자유롭지 못한 데서 오는 결과라고 한다. 옛 기와에는 무늬가 들어 있는데 이 무늬는 균열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물론 현대식 기와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11년째 계속되는 복원공사로 마을 곳곳의 집들은 겉모양은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지만 내부는 입식인 기형적인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 주생활공간이었던 부엌에는 보일러가 설치됐고 소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내던 외양간은 대부분 화장실과 욕실, 창고로 바뀌었다. 벌목이 죄가 되는 요즈음 장작을 지펴야 하는 전통생활을 강요하는 것은 모순이다. 전통뿐 아니라 주민들의 삶 또한 보존돼야 할 것이다. 전통마을 보존을 위해서는 생활지역과 보존지역을 나누는 등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출처: http://100mt.tistory.com/entry/백두대간사람득-5-왕곡마을-과거로의-회귀를-강요당하는-전통마을-1호 [<한겨레21> 신 백두대간 기행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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